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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불 아래서] 먼지 한 톨도 무겁지만

예전에 아침 등굣길은 버스에 올라타려고 뛰어가는 순간부터 숨 막히는 전쟁이었다. 더는 도저히 탈 수 없다고 생각하는 순간 아이들은 버스 안으로 빨려 올라가고 문을 닫지도 못한 안내양들은 마지막 잎새처럼 난간에 매달려 숨 고르기를 했다. 운전기사의 전설적인 S자 운전을 기다리는 것이다.   한쪽으로 사람들을 기막히게 몰아버리는 순간, 단 한 번의 실수도 없이 모두를 밀어 넣으며 문을 닫는 기술은 아침부터 비명과 함께 경탄을 자아냈다. 흰 장갑을 끼고 숨을 몰아쉬던 누이들은 지금 생각해 보니 겨우 서너 살 더 많았던 정말 삶을 치열하게 살던 전사들이었다.   피곤함에 지쳐 한 정거장에서 쪽잠을 청하다가, 조금 늦게 문을 열었다고 막무가내 승객이 퍼붓던 한 사발 욕을 다 먹기도 했다. 그렇게 꿋꿋해 보이던 그녀는 한 승객이 "그러니 왜 잠을 자. 서울까지 뭣 하러 와서는"이라는 말에 돌아보지도 못하고 조용히 서럽게 울었다.     설상가상. 눈 위에 서리가 내린다는 이 말은 원래 더해 봤자 표도 안 나는 잔소리라는 뜻이었다. 그러나 나중에 이 가벼운 서리가 무거워졌다. 엎친 데 덮친다는 뜻이 되었으니 말이다. 정말 힘들 때는 먼지 한 톨도 무거운 법이다.   우리도 모두 인생의 무게를 지고 걷는다. 한마디 말이 먼지 같지만, 그 먼지로 무너지기도 한다. 그 말이 연자 맷돌이 되기도 하기 때문이다. 상처가 없는 사람은 없다.     그렇게 문가에 서서 서럽게 울던 모습이 안쓰러웠지만, 금세 눈을 훔치고는 '오라이'하며 씩씩하게 버스 옆구리를 치던 모습도 잊히지 않는다. 얼굴을 고치려고 꺼냈던 조그만 손거울. 그리고 그 뒤에 붙어있던 가족사진. 그녀는 혼자가 아니었다.   작은 손거울 뒤에 붙은 가족사진이 힘차게 '오라이'를 외치게 했다면, 우리 인생을 홀로 두지 않고 그 어깨에 우리를 짊어지는 분이 있다면 우리는 무엇을 외칠 수 있을까? 내 인생을 짊어진 그 분이 눈 위에 다시 내린 서리를 어찌 짊어지지 못하겠는가? 나의 상처를 자기 심장에 새긴 분이 어찌 먼지 한 톨을 함께 새기지 못하겠는가.   내 인생의 거울. 그 거울 속에는 내 얼굴만 있지 않다. 예수님의 얼굴이 있다. 먼지 한 톨도 무겁고, 상처 하나도 아프지만 주님은 넉넉하게 우리 인생을 모두 짊어지신다. 주님이 나의 발자국이 되어 주시는 인생이라면 우리도 힘차게 '오라이(all right)'라고 외치자. "주님, 모두 괜찮고 모두 좋습니다. 앞으로 가세요. 함께 가겠습니다."   sunghan08@gmail.com 한성윤 목사 / 나성남포교회등불 아래서 먼지 우리 인생 모두 인생 버스 옆구리

2023-11-06

[신호철의 시가 있는 풍경] ’내일은 약속되어 있는가’

H작가님의 수필집을 받아 들고 눈이 고정된 곳은 책 제목이었습니다. ‘내일은 약속되어 있는가?’ 왠지 그 질문은 내게 던진 질문 같았습니다. 스스로 대답을 미루다 고개를 저었습니다. 부끄러워지고 있습니다. 고개를 드니 파란 하늘이 간간히 무리 지은 구름을 거느리고 유유히 흐르고 있었습니다. 하늘 아래 고개를 쳐든 한 사람이 보이고 사람의 모습은 점점 작아집니다. 그리고 이내 사라져 버립니다.   이렇듯 미물인 우리에게 오늘이라는 하루를 허락한 것은 대단한 축복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그 시간을 누리지 못하는 우리는 참으로 부끄럽습니다. 내일이 약속 되었다고 자신 있게 말 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겁니다. 내일은 오늘과 다를 것이고 만나는 사람도, 걸어야 할 길도 다를 것입니다. 어쩌면 우리에게 오늘은 마지막 축복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무심히 하루를 맞이하고 서쪽 하늘에 걸린 노을에 눈길 한번 주지 않는 냉냉한 하루를 보내고 있지는 않는가 묻고 있습니다.   얼마 전 어떤 분의 이야기를 듣고 배꼽을 잡았던 기억이 있습니다. 빌렸던 물건을 리턴하려고 가는 중에 생각해보니 그 물건을 안가져온 것을 깨닫고 발길을 돌려 집으로 가는 중이었답니다. 내가 지금 어디로 가고 있지?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답니다. 길가에 우두커니 서 있다 왼 손을 보니 빌린 물건을 들고 있더랍니다. 신나게 박수를 치며 발을 구르며 웃었지만 그건 웃을 일이 아니었습니다. 울어도 시원찮을 일이었습니다. 내일은 약속되어 있는가?의 물음 앞에서 자꾸 작아집니다. 그래서 우리는 오늘 기뻐해야 하고, 오늘 감사해야 합니다. 오늘 사랑한다고 말해야합니다. 오늘 해야 할 일을 약속되지 않은 내일로 미룰 수 없습니다.   좋은 책을 선물로 주신 H작가님께 작은 선물로 보답해드리고 싶었습니다. 나는 지금 소담스럽게 핀 노란 꽃무덤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아 있습니다. 둥그런 항아리에 물을 채우고 시들지 않는 꽃들을 찾아 한 송이 한 송이 항아리에 담고 있습니다. 꽃을 뒤적이다 보니 꽃이 다 똑바르게 피어 있는 건 아니었습니다. 어떤 것은 휘어져 있고 어떤 것은 아래로 구부러져 있습니다. 나는 H작가의 나이만큼 꽃을 항아리에 담았습니다. 어쩌면 우리 인생도 이렇지 않을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하나의 꽃 또 하나의 꽃들이 만나서 항아리에 담겨지는만큼 세월이 지나고 한 인생이 항아리 속에 담긴다는 생각이 듭니다.     글도 한 단어 한 단어가 모여서 문장을 만들고 그 문장이 모여서 하나의 글이 되듯이 항아리에 하나의 글이 소담히 담긴 듯 보였습니다. 세상에 보이는 모든 것들은 지나쳐 버리면 우리의 마음 속에 아무런 영상을 맺혀주지 않지만 가까이 다가가 관심을 가지면 그 속에는 우리가 알지 못하고 깨닫지 못했던 많은 일들을 발견하게 됩니다.     한아름 담겨진 꽃 항아리를 들고 H 작가님의 출판기념 장소로 가는 발걸음은 참으로 즐겁습니다. 서랍 안쪽에서 손바닥보다도 작은 하모니카를 꺼내서 닦고 있습니다. 열 개의 음 밖에는 낼 수 없는 아주 작은 하모니카입니다.     H 작가님의 수필집 안에 수록된 ‘쇼팽의 야상곡 2’ 내용을 읽다가 마음이 뭉클합니다. 한 사람의 인생을 보고 있습니다. 아픔과 고통이라는 터널을 지나고 난 후 조용히 찾아오는 작은 행복도 느껴 보고 이제는 노년이 되어 지나온 날들을 뒤돌아 보며 쇼팽의 녹턴을 음미하는 H 작가의 모습에서 울컥했습니다.     쇼팽의 피아노 연주곡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겠지만 못하는 하모니카 연주라도 해야겠다 마음먹었습니다. 호주머니에 넣고 다니면서 차 속에서도 꺼내 불고 걸으면서도 불다 보니 이 하모니카 또한 인생이었습니다. 이 작은 악기소리에 행복도 슬픔도 있고 설레임도 그리움도 담겨 있습니다. 10개의 작은 통로를 통해 각기 다른 음으로 울리어 하모니를 만들어내는 하모니카 또한 하나의 인생이었습니다.    낮은 음과 높은 음은 제 소리를 낼 뿐인데 어우러지면 누구도 만들 수 없는 나만의 이야기를 만들어냅니다. 쇼팽의 피아노 야상곡, 마음을 저미는 깊은 울림에 비할 수 있겠냐만 좋은 책을 주심에 대한 감사의 마음이 아 작은 하모니카를 통해 H작가에게 전해졌으면 좋겠습니다. 에델바이스의 꽃말처럼 남은 삶도 힘이 다할 때까지 마지막 한 방울까지 고귀하고 숭고한 글들을, 희노애락의 영롱한 꽃들을, 걸어가야할 황혼의 길가에 가득히 피워주시기를 바래봅니다. (시인, 화가)     신호철신호철의 시가 있는 풍경 약속 피아노 연주곡 피아노 야상곡 우리 인생

2022-09-20

[독자 마당] 건강 그리고 행복

몸이 아파 고통 속에서 긴 밤을 지새워 보지 않은 사람은 편히 잠들고 아무 일 없이 아침을 맞는 일상이 얼마나 행복한지를 알지 못합니다.     우리가 마음 편하게 웃고 떠들며 즐거워하는 순간에도 많은 사람이 참기 어려운 고통 속에서 절망하며 생명의 끈을 붙들고 몸부림치며 하느님을 원망하며 죽어가고 있다는 사실을 건강한 사람들은 정말로 모릅니다.   사람들은 건강하게 살면서도 때론 쉽게 절망하고 작은 일에도 세상을 원망하고 자신이 세상에서 가장 불행하다고 생각하는 많은 사람은 지금 자신들이 얼마나 행복하다는 것을 모르는 어리석은 사람들입니다.   불치병으로 희망을 잃어버리고 무서운 아픔의 고통 속에서 하루하루를 연명하고 있는 많은 사람이 주위에 너무 많은데 건강한 사람들은 그들의 아픔을 돌아보기는커녕 지금 건강한 몸이 얼마나 행복한 줄 모르고 더 많이 더 높은 곳을 향하여 제어장치가 고장 난 자동차처럼 앞만 보고 달려가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보는 사람들의 마음을 화나게 합니다.   돈과 명예, 천하를 다 얻었다 해도 건강을 잃으면 아무 소용 없는 것을….     행복이란 건강한 몸 말고는 어디에도 없다는 것을 건강한 사람들은 정말로 모르는 바보같은 사람들입니다. ‘인생백년 삼만육천일 불여선가반일한(人生百年 三萬六千日 不如禪家半日閑)’이라 사람의 백 년 인생이 긴듯하나 선가의 반나절도 못 되는 짧은 생인데….   저승 갈 때 티끌 하나, 공기 한 모금도 못 가져 가는 우리 인생, 아픈 이웃에게 따뜻한 손길 잡아주는 멋진 삶을 살아보지 않으시렵니까?     건강함에 늘 감사하며 감사한 마음을 사랑으로 어려운 이웃을 돕는다면 모두가 행복해지는 아름다운 세상이 될 것입니다.   건강과 행복은 사랑이 함께 할 때 밤하늘의 별빛처럼 아름답게 빛나게 됩니다. 이산하 / 노워크독자 마당 건강 행복 명예 천하 우리 인생 티끌 하나

2022-08-08

[신약인물탐구] 마태

 오늘 살펴볼 신약의 인물 ‘마태’는 예수님의 제자이자 신약 성경 ‘마태복음’을 기록한 저자입니다. 마태는 헬라식 이름입니다. 누가복음에는 이 마태를 ‘레위’라고합니다. 이 이름은 히브리식 이름입니다. 당시는 아랍어, 히브리어, 헬라어 등이 함께 혼용되어서 사용되던 시기였기 때문에 2개 이상의 이름을 가진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레위라고도 하는 마태의 직업은 당시 세관의 관원이었습니다. 당시 세관은 운임이나 통행료를 받는 곳으로 세금을 징수하는 일을 하는 세리가 근무하는 사무실과 같은 곳이었습니다. 사람들로부터 세금을 받아서 로마 정부에 상납을 하는 과정에서 세리들은 부당한 이익을 챙겼습니다. 거두어야 하는 금액보다 더 많은 돈을 사람들에게 징수해서 나머지 돈은 모두 자신이 가졌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세리를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당시 사람들이 세리를 싫어하는 또 다른 이유는 세리들이 취급하는 돈을 깨끗한 것으로 여기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세리들은 이방인들의 돈과 불의한 방법으로 얻은 이익에서 세금을 징수하고, 그 돈을 만지는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유대인들은 세리를 정결하지 않은 자로 취급했습니다. 참 이상하지 않습니까? 세리들이 도둑질한 돈, 창기들의 부정한 돈을 취급하기 때문에 정결하지 않는 사람이라고 말하는데, 당시 성전에 드려지는 헌금에도 이 돈들이 돌고 돌아서 오게 됩니다. 그리고 종교 지도자들은 성전의 헌금을 자기 것으로 챙겼습니다. 얼마나  이율 배반적입니까? 돈을 더럽다고 말하면서 돈을 밝히는 상황입니다. 그리고 죄인과 세리는 항상 함께 취급을 합니다. “예수께서 마태의 집에서 앉아 음식을 잡수실 때에 많은 세리와 죄인들이 와서 예수와 그의 제자들과 함께 앉았더니 바리세인들이 보고 그의 제자들에게 이르되 어찌하여 너희 선생은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잡수시느냐” -마태복음9장10절, 11절. 세리를 부정한 사람, 죄인으로 취급했습니다. 이런 가운데 예수님께서 세관에 앉아서 오늘도 여전히 돈에 집중된 삶을 사는 마태에게 찾아오십니다. ‘예수께서 그 곳을 떠나 지나가시다가 마태라 하는 사람이 세관에 앉아 있는 것을 보시고 이르시되 나를 따르라 하시니 일어나 따르니라’ -마태복음9장9절. 예수님께서 ‘나를 따르라’라고 마태에게 말씀하십니다.        이것은 지금 잠깐 나와 함께 갈 데가 있다는 뜻이 아닙니다. 지금까지 하고 있던 삶에서 빠져 나오라는 말씀입니다. 부당한 이익을 챙겨서 경제적으로 여유로웠던 삶에서 빠져 나오라는 것입니다. 이 부르심에 응답하는 것이 쉬울까요? 우리가 흔히 ‘나는 예수님의 제자다’라고 말하는데 제자가 무엇입니까? 내 삶은 그대로 있고 거기에 예수님을 스승, 선생으로 여기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것이 삶의 우선 순위가 되는 사람입니다. 그러기 위해서 내 생각, 내 주관, 내 이익도 포기하는 것입니다. 결코 쉽지 않습니다. 입으로만 따른다고, 순종 한다고 말하는 것이 제자가 아닙니다. 마태는 예수님의‘나를 따르라’는 말씀에 순종합니다. ‘그가 모든 것을 버리고 일어나 따르니라’ -누가복음 5장28절. 여기에 버리다는 헬라어로 ‘카탈레이포’입니다. ‘버리다’, ‘떠나다’, ‘남겨두다’, ‘소홀히 하다’의 뜻입니다. 나중에 다시 찾을 것을 대비해서 다른 곳에 보관해 두는 것이 아니라 잃어 버려도 상관 없다는 생각으로‘내팽개쳐버리다’라는 의미입니다. 어쩌면 평생을 부여잡고 살던 세리라는 직업. 그것으로 인해서 얻어지는 이익 등 여러 가지를 한 순간 포기하는 것, 잃어버릴 수 있는 순간입니다. 그것을 마태는 각오하고 자신이 깔고 앉아있던 ‘세관’을 박차고 나와서 예수님이 서 계신 곳, 제자의 길에 섭니다. 이것이 순종입니다. 오늘날 기독교에 대해서 오해하는 것이 예수 믿으면 건강하고,아픈 데가 없어지고,실패 없이 성공 만 있고, 부유하게 될 것이라는 겁니다. 그래서 예수 믿으면서 아픈 사람, 실패한 사람들을 보면서 기도 제대로 안 해서, 신앙생활 제대로 안 해서 그렇다고 판단합니다. 약 33세에 단명하신 예수님은 실패한 인생입니까?  예수 믿기 전에는 잘 나갔지만 예수 믿고 난 뒤부터 고난, 핍박, 매 맞음의 고생길을 산 바울도 실패한 인생입니까? 믿음은 우리 인생의 장식품이 아닙니다. 하나쯤 있으면 나쁘지 않는 종교가 아닙니다. 하나님을 믿는 믿음은 하나님의 말씀이 인생의 전부가 되는 것입니다. 그것을 위해서 내 것을 포기하고, 버릴 수 있는 결단입니다. 무늬만 기독교인 삶, 입으로만 순종을 떠드는 삶이 아니라 마태처럼 결단하고 예수님께로 오는 겁니다. 이것이 진정한 제자의 길입니다. 마태와 같은 결단과 순종으로 예수님 제자의 삶을 사는 우리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목회칼럼신약인물탐구 마태 목회칼럼 예수님 제자 가운데 예수님 우리 인생

2022-03-07

[신호철의 시가 있는 풍경] 나로 살아가는 이유

나로 살아가는 이유       슬퍼하지 않으려면   안으로 안으로 삼켜야 합니다 그래도 슬픔이 머무르면   내가 지은 높은 벽   윗부분부터 허물어야 합니다   허물다 보면 벽 너머   다른 세상이 보입니다 낮아진 벽 너머로 흔들리는 나무가지가 보이고 바람이 불어 옵니다   하루가 지나는 소리 나로 살아가는 이유입니다   아프지 않으려면   귀로 보고 눈으로 듣는   난이도를 통과 해야합니다 보려면 눈을 떠야하는데   눈감고 귀로 보아야 합니다 소리내지 않는 꽃, 나무 눈 감고 귀를 엽니다 꽃이 먼저 말을 걸어오고 나무가 중얼거리기도 하는   다른 세상이 들립니다 하루가 지나는 소리 나로 살아가는 이유입니다     ‘오늘 무엇을 생각하고, 어디를 향해 걷고 있는 거지?’ 엉뚱한 질문을 내게 던진다. ‘그냥 열심히 살면 되지, 무슨 질문이 그래.’라고 반문할 지 모르지만 내가 향하고, 생각하고 있는 오늘이 결국 바로 나의 미래가 되기 때문에 이 질문을 피해가서는 안 된다. 목표를 정하고 그 길을 걷다 보면 그 길의 끝에 도달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나에게 관심을 갖고 내가 어떤 길을 가고 있는가 나를 살피는 시간이 꼭 필요하다. 행여라도 나를 잃어버리고 그저 하루 하루 급한 일에 쫓기며 살고 있는지 돌아볼 일이다. 나를 찾아 나다운 삶을 살아감은 인생을 살아가며 가져야 할 중요한 관문이 아닐까 한다. 그 일은 빠를수록 좋고 깊고 단단 할수록 견고한 삶을 이룰 수 있어 좋을 것이다. 등산을 앞두고 어느 봉우리를 향해 오를 것인가를 생각지 않고 산을 오른다면 그 등반은 내내 지루하고 힘든 산행이 될 것이다. 우리 인생의 길도 그렇지 아니 하겠는가. 사노라면 의도치 않게 곤경에 빠질 때가 있다. 그 불편하고 불안전한 상황을 극복하려면 나를 사랑하고 나답게 살 수 있는 진정한 나를 발견하는 일일 것이다. 어떨 때는 나의 삶이 타인의 말과 행동, 의도에 따라 흔들릴 때가 있다. 그때 나를 다잡는 일은 매우 중요한 일이요. 그저 덮어두고 지나갈 일이 되어서는 안 된다.   겸손은 때로 목표를 향해가는 여정에 방해 요소가 될 때가 있다. 살아가면서 가져야 할 덕목 중 하나가 겸손이라고 한다. 또 자기를 낮추고 상대를 인정해주는 것이 삶의 지혜일 수 있다. 그러나 어느 경우에나 다 해당되는지에 대해서는 동의할 수 없다. 오히려 도가 지나친 겸손은 자존감을 낮추고 무기력한 삶의 단초가 되기 때문이다. 내가 할 수 없는 일에 No라고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한다. No라고 대답한다고 건방지거나 무례한 사람이 아니다. 부드럽고 설득력 있는 거절은 상대의 마음을 상하게 하지 않으면서도 자신의 가치와 인격을 드러낼 수 있다. 내가 하고 싶지 않은 일을 타의로 받아놓고 힘들어 한다면 그건 겸손이 아니라 나 자신을 배려하지 못한 미성숙한 태도일 것이다. 불편하고 유쾌하지 않은 나 자신을 버리는 일은 진정한 나를 회복하고 나로 살아가는 첫 걸음이 될 것이다. 나답게 산다는 것은 유아독존으로 살아간다는 말이 아니다. 건강한 자아를 회복하고 ‘목적이 이끄는 삶’을 살자는 것이다.우리가 종종 잊고 살았던 인생의 목표를 다시 바라보며 나를 지으신 이의 목적대로 그 길을 평안함 속에 자존감으로 살아가자는 것이다. 눈을 감아도 보이고 귀를 막아도 들을 수 있는 다른 세상으로 살아가게 될 것이다. 진정한 나를 찾은 후로는….(시인, 화가) 신호철신호철의 시가 있는 풍경 행동 의도 우리 인생 시인 화가

2021-1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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